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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숙에서 성숙으로'









 한 나무가 있다. 수년의 세월을 거치며 자라온 나무이다. 그런데 이 나무가 바람만 불면 매우 심하게 흔들리고 가지가 부러지곤 한다.






자, 이러한 나무가 눈앞에 있다고 가정하자. 어떤 생각이 드는가?

'환경'이라는 단어가 눈앞을 스쳐갈 것이다. 나무가 자라온 환경, 그 환경가운데에서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속에 떠오를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수많은 이유를 찾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나무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성숙한 단계로 가지 못한 것이다.

성장은 했지만, 성숙은 하지 못했기에 어딘가 불안하고, 힘이 없는 모습으로 자라온 것이다.






사람들은 자주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다거나, 외면시 한다거나,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의도적으로 그러했든, 그렇지 않든간에 말이다. 사람들이 자주 놓치는 것중의 하나가 바로 '성장' 과 '성숙' 을 따로 떼어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성장하고 싶어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성숙하고 싶어요'





어떤 사람들은 성장이 곧 성숙인 것 아니냐는 반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성장이 곧 성숙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다. 성장은 했어도 미성숙한 모습일 수 있다. 그래서 성장과 성숙은 같은 의미로 쓰이면 안된다.







이제, 성장과 성숙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성장은 했지만, 성숙하지 못했다면, 성숙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성장의 모습인 것이다.


즉, 성숙이 같이 자라는 성장이 되어야 제대로 커가는 것이다.

몸의 성장과 더불어 마음의 성장, 생각의 성장, 그리고 비로소 사람다움의 성장을 이루는 것이다.





어릴적에는 성장하고 싶었다. 키가 크고 싶었고, 지식도 자라기를 원했다.

그런데, 지금은 성숙이 없는 성장은 잘 못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인이 되고, 지식도 쌓이고, 생각의 폭도 넓어지고, 이제는 '나도 어른이다' 라는 마음이 들어서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그리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비로소 가정다운 가정을 이루어가고 있구나 - 라고 생각을 한 순간,






문제들은 터지기 시작했다.

표면적으로는 성장을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성숙없는 성장은 스크래치와 같다는 것을 알았다.

좋은 가구를 샀는데, 스크래치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이 스크래치들이 많아지고, 심지어는 더 커진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마음이 들겠는가? 


예쁜 가구를 샀다라는 마음은 이제 떠난지 오래다. 가구가 흉물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버려야겠어 - 라는 생각도 찾아오기 시작한다.




바로 이 모습이 성장에서 '성숙'이 빠질 때 찾아오는 모습인 것이다.

우리는 일상 생활가운데서 수많은 스크래치를 내고 있다. 별 것 아닌데도 배우자에게, 자녀에게, 후임에게 화를 내고, 상대의 생각을 무시하고 살 때가 있지 않은가?


바로 이러한 스크래치들이 가정을 가정답지 못하게 하고, 사회를 사회답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이제 인정해야 한다. 내 안에 많은 스크래치들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이 스크래치들을 없애야 한다. 

성장에서 성숙이 빠지면 문제를 발생시키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 성숙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어찌보면 성장보다 성숙이 먼저여야 한다. 성장은 더딜지라도 성숙한 사람은 남에게 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도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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